영양의 주봉인 일월산에서 수비면 뒤편의 우령대령으로 다시 명동산으로 이어진 "답곡리"

  • 답곡리 전경
  • 만지송

영양의 주봉인 일월산에 수비면 뒤편의 우령태령으로 다시 명동산으로 이어진다. 그 가운데 큰 봉우리가 시루봉인데 봉우리의 동남은 영덕군에, 서쪽으로는 청송군에 인접하여 있다. 답곡 마을은 시루봉의 북쪽으로 빠져 자리한 마을이다. 시루봉 우측으로는 작은 시루봉·성산봉·투구산과 혈친맥인 발검산이 있다. 좌측은 탕건봉·독점재·장수나무산이 답곡마을 앞산이 된다. 서쪽은 시량동(時良洞)과 경계를 하고 있으며 교통이 아주 불편한 고장이다. 시루봉에서 흘러내리는 묻은 답곡동의 젖줄이 되는 상중하논실에 물어 대어준다.

마을의 특징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마을의 상징으로는 답곡쑤가 있는데, 혹은 논실쑤라고도 부른다.
쑤는 이 마을의 어구에 있는 숲으로서 두세 아름 되는 소나무 느티나무와 잡목이 숲을 이루고 있다. 동네의 수호신을 위하여 매년 정월에 보름이면 제사를 지낸다. 만지송은 이 마을의 상징이자 영양군의 보호수이다. 두 그루가 한 나무인 양 용트림을 하고 있는 모습은 아주 장관이다. 박씨부인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아울러 만지송을 들 수 있는데 뒷골 어구에 있는 소나무를 이른다. 소나무 밑에서 가지가 많이 나와 버섯 모양을 이루었으면 둘레가 세 아름이나 된다. 주곡리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쑤 곤 나무를 섬기는 일을 숲을 신의 집 혹은 생명을 뿌리로 생각하는 나무 신앙에서 나온 것이라고 추정된다. 따지고 보면 숲속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먹거리이며, 입성이라든가 집의 문제까지도 모두 다 해결되는 곳이다. 그 당시로는 숲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을만하다.

자연 부락의 이름과 유래

논실·답곡(畓谷)·노곡(魯谷)

이 마을은 고려때부터 있었던 곳으로서 조선시대 영해부12곡 가운데의 하나이다. 원이름은 논실마을이다. 약 8백년 전에 마을터가 마련되었다는데 여기서 돌칼, 돌창이면 숟가락 등의 유물이 나왔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나오는 걸로 보아 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추정된다.
논실 뒤에는 시루봉이란 산이 있는데 옛날 하늘 땅이 개벽을 할 때라고 한다. 다른 곳으 다 물에 잠겼는데 유독 이 것은 봉우리가 실만큼 남았다고 한다.

또 장댓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골짜기의 정기로 말미암아 장수가 태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그래서인지 임진왜란 후 중국의 이여송(李如松) 장군이 조선에서 큰 인물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팔도를 두루 돌아다닌다면서 이른바 혈맥을 끊었을 때 장댓골에서도 쇠말뚝을 박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 시대에는 논실을 노곡(魯谷)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노곡이라 함은 노라라의 공자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 지향성이 강하기 때문에 논실과 비숫한 한자이면서도 공자의 나라 노(魯)룰 넣어 부르게 된 이름으로 보인다. 또 답곡이라는 이름도 논실을 한자로 뒤쳐서 부른 이름이다. 논실은 대구 등의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논실에서 실은 골을 이름이나 '논'의 본질은 무엇일까. 삼국사게에서 신라, 고구려 시대의 땅 이름을 보면 땅을 이르는 말로서 노(奴), 나(拿), 뇌(㑎) 등의 기원적으로 땅은 생산의 어머니요 보금자리이기에 먹거리 마련의 제일이 된다./p>

아래논실·하논실·하답곡·답하동(畓下洞)·하노곡(下魯谷)

논실마을에서 제일 아래쪽에 있으면 원리동과 이어지는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마을 터주이신 광산 김씨 골목이라고 하면 광산 김씨를 위하는 신위목(神位木)과 안(安)시를 위하는 신위목을 이 마을의 동신(洞神)으로 모시고 지금도 정월 보름달 저녁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석기 시대에 이 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다. 돌창·돌도끼·돌그긋 등이 마을 앞산에서 발굴되고 마을의 송목과 만지송은 이 마을의 유서 깊음을 드러내고 있다.

중논실·중답곡·답중동·중노곡(中魯谷)

논실 마을의 중간 지점에 자리를 잡은 마을이어서 중논실 혹인 중노곡이라 하였다. 이 마을은 아주 오래전부터 쇠르 만든 철마(鐵馬) 3피리을 성황당의 당신으로 모시고 정월 대보름날에 제사를 지내서 일년 동안 마을의 안녕을 빈다.

웃논실·상논실·상답곡·답상동·상노곡(上魯谷)

하논실에서 약 4킬로 정도 떨어진 마을로서 하논실보다 위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나라에 우 약국·최약국이 있었고 양두들·백가두들이 있다. 그 밖에도 정개골·매네밭골 등이 있으는 것으로 보아 성씨를 따라서 골의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