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보면과 입암면의 사이가된다하여 붙여진 이름 "지경리"

  • 지경리 전경
  • 지경리 전경

석보면과 입암면의 사이가 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의 자리에 따라서 상지경과 하지경으로 불리워진다. 본래 영양군 석보면의 지역으로서 전에 진보군과 경계가 되는 마을이라 하여 옛부터 지경(地境)이라 부른다.
1914년 행정 구역을 고칠 때 월동 일부를 합하여 그리 불렀는데, 의병 대장 이하현(李夏玄)장군이 태어난 고장이다.(

마을의 특징

이 마을의 상징적인 것으로는 독굴과 당나무를 들 수 있다. 독굴이라 함은 도둑의 굴이라는 말인데 노달(老達) 마을에 있는 큰 굴로서 약 5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는데 옛적에는 이 곳이 도둑의 소굴이었다고 전하여 온다. 같은 독굴이란 이름을 구석쪽에 독같이 우묵하게 들어갔기 때문에 붙인 이름으로도 풀이되는데 여기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당나무는 지경 마을 앞에 있는 소나무인데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마을에서 제사를 지낸다.

자연 부락의 이름과 유래

지경(地境)·단계(丹溪)

고려 시대에 이 곳이 영해부에 속해 있을 때에는 영해부의 제일 끝이라 하여 단계로 불렀다 한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행정 구역 개편으로 이 곳이 옛 영해부와 진보현의 경계가 되는 땅이라 하여 지경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곳이 석보면과 입압면의 경계가 되는 곳인데, 마을의 위치에 따라 웃지경과 아랫지경으로 나눈다.

방밭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진보현과 영해부의 경계가 되므로 마을 이름을 지경이라고 불렀다. 마을 복판의 도량을 두고 동편은 석보 지경, 서편은 입암 지경이 되었으나 1986년 이후 석보면을 편입되었다.

진골·조양동(朝陽洞)

지경에서 석보로 오는 모퉁이에 있는 마을이다.옛날에는 석보장이 이 것에 섰으나 인구가 증가하고 장터가 비좁아지면서 원리의 장터로 옮아가버리고 장터만 남아 있다. 옛장터를 한자로 뒤치면 구장기가 된다.

비싯골 동남쪽에 몇 개의 골짜리를 넘아가야 되는 계곡에 있는 마을이다. 8·15 광복 후에 개간하여 마을을 이루어 살고있는 마을로 긴 골짜기 위에 이루어져서 햇볕이 들고 따스한 곳이어서 조양동이라 하기도 한다. 비싯골에서는 비시는 빗 곧 빛을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또한 진골은 긴골이어서 소리가 바뀌어서 굳어진 이름이다.

구싯골·구수골(九水谷)

이 마을은 지경에서 몇 개의 골짜기를 넘어가야 되는 계곡에 있는 마을이다. 산골짜기 사이에 자리한 관계로 주위의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 내린 아홉 계곡의 물줄기가 이 곳에서 합해져 냇물을 이룬다고 하여 구수곡이라고 불렀다 한다. 전해오는 말에는 마을이 들어앉은 골짜기가 마치 소의 구유처럼 생겼다고 해서 구싯골이라고도 한다. 다른 곳의 마을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 소의 구유처럼 우묵하게 들어간 생김새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기본형은 굿에서 갈라져 나온 이름이다.